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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나의 서양화 입문서,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미술

by Dador 2022. 9. 2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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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잔 반 예이크, 1434년, 82cm x 60cm, 오크화판에 유화,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제가 그림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반 고흐 같이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 아니라 네덜란드 화가 잔 반 예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이었습니다. 내셔널 갤러리의 네덜란드 관에서 가장 처음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그림이었습니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잔 반 예이크를 대표하는 그림입니다. 아마도 이 그림이 많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은 비결은 놀라울 정도의 정교함일 것입니다. 반 예이크는 유화를 처음으로 사용한 화가라고 알려져있죠. 물론 이를 정확하게 확인할 방법은 없겠지만 유화기법이 플랑도르 지역, 즉 지금의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발전되었던 것은 사실이고 반 예이크는 당시 네덜란들르 대표하는 화가였기에 꼭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네덜란드 유화를 대표하는 그림이자 그의 유화기법의 정수를 보여준 그림이 바로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입니다.

 

  르네상스 이전 중세시대 미술가들은 주로 템페라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인료를 계란 노른자에 개어만든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었는데 물감이 빨리 마르고 잘 변질되지 않기에 선명한 색상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죠. 하지만 물감이 빨리 마른다는 것은 곧 붓이 빨리 굳는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는 세부묘사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불투명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 물감을 여러겹 덮어 씌워서 섬세하고 미묘한 색상을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당시 유럽의 그림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현실감이 떨어지고 그림보다는 조각상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비너스와 마르스, 산드로 보티첼리, 1483년, 69cm x 1.73m, 템페라,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반면 유화는 빨리 마르지 않아 세밀한 붓질이 가능했고 무엇보다 투명한 성질을 가졌기에 색을 여러 번 덮어씌워 실제 사물과 매우 유사한 색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네덜란드 화가들은 유화물감을 활용하여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한 그림을 그려 유명해졌는데 마치 거울을 비추듯 세상을 그대로 그림에 담아내었다. 알프스 이북의 현실주의 혹은 자연주의(naturalism)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으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차별되는 플랑드르 르네상스 양식으로도 이어집니다.

 

  유화가 대중화 된 이후에도 플랑드르 화가들의 그림은 독보적인 섬세함을 자랑했는데 이는 유럽 남부의 화가들이 전통적으로 익숙해져 있던 템페라 기법을 쉽게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성 세바스찬의 순교>라는 그림은 유화 물감을 사용했음에도 템페라 특유의 단순한 색의 대조와 비교적 평면적인 그림체를 확인할 수 있죠.

 

 

 

성 세바스찬의 순교, 폴라이울로 형제, 1475년, 나무에 유화, 291.5*202.6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혹은 아래 두 그림을 비교해보면 당시 네덜란드 화가들의 독보적인 섬세함을 직접 느껴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그림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바르톨로메 베르메호 그림이며 두번째 그림은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화가 미겔 시메네스의 작품입니다. 두 그림 모두 대천사 미카엘이 악마를 상대로 승리하는 장면을 비슷한 구도로 그리고 있죠. 또한 그림을 그린 화가 둘 다 동시대의 스페인 화가이며 유화물감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슬쩍 봐도 분명한 차이가 느껴집니다. 베르메호는 네덜란드의 유화기법을 숙달한 화가로 대천사 미카엘의 망토와 갑옷의 질감, 명암, 색깔 등을 매우 생생하고 생동감 있게 구현해냈습니다. 반면 시메네스의 그림은 어딘가 밋밋해보이고 평면적인 느낌이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첫번째 플랑드르 양식을 대표하는 반면 두번째 그림은 당시 전형적인 알프스 이남의 그림의 느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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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두 그림의 차이, 즉, 유럽 남부의 유화물감과 템페라 기법을 결합한 그림이 주는 느낌과 플랑드르 스타일의 유화 기법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면 반 예이크의 그림이야 말로 15세기 플랑드르의 정교한 양식의 정수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림의 구석구석만 봐도 화가가 인물들과 사물의 정교한 묘사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죠. 그림 하단부의 강아지의 털 묘사, 거울의 유리와 옆에 걸려있는 장신구 솔의 질감의 차이, 스테인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의 포착, 천장에 걸려 있는 샹들리에를 보세요! 매우 현실적이고 정밀한 묘사에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템페라 기법으로는 구현해 낼 수 없는 디테일한 이런 묘사들을 보면 유화의 발견이 왜 서양 미술사에 있어 획기적인 발견이었는지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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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 초상화가 저에게 특히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이 그림을 통해 예전에까지는 따분하게만 느껴졌던 미술을 다시금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단히 정교하지만 어떻게 보면 평범하다고 여길 수 있는 이 초상화 안에 반 예이크는 너무도 많은 상징과 은유들을 숨겨놓았습니다. 이를 눈여겨 볼 때 비로소 그림을 감상한다는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 느꼈던 짜릿함이 개인적으로는 너무 기억에 남아서 이렇게라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그림을 다시 한번 볼까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두 인물일 것입니다. 당시에는 매우 비쌌던 모피코트를 입고 있는 것을 보아 부유한 출신임을 금방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창가를 한번 볼까요. 열매가 맺은 체리나무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보건데 모피코트를 입을 만큼 추운 계절이 오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또 다른 어색한 점은 창가의 오렌지로 일부로 세팅해 둔 것 같은 매우 작위적인 구도를 풍깁니다. 네덜란드 같은 비교적 북부지방에는 오렌지가 매우 귀했기 때문에 돈이 많은 사람들만 사 먹을 여유가 있었습니다. 또 방안의 가구, 섬세하게 조각된 침대틀, 스테인글라스 역시 부부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드러내줍니다. 즉, 이 그림은 은근히 노골적으로 두 사람의 부유함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이 그림이 밉지 않은 이유는 모피코트의 질감, 드레스에 달린 레이스,  옷의 주름, 스테인글래스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 침대 프레임의 나무 조각까지 인내심 있게 물감을 겹겹이 쌓아 꼼꼼히 표현해낸 화가의 노고가 느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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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친 반 예이크의 모습.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의 원조격 장치가 아닐까.

 

 

  그런데 사실 이 그림에는 두 명의 사람이 더 있습니다. 중앙에 위치한 거울을 보면 알 수 있죠. 이 거울은 이 그림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치로 거울을 자세히 보면 그림의 주인공인 두 사람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반 예이크와 그의 조수로 여겨지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또 거울 위에는 "반 예이크가 여기 있었다"라고 쓰여있다. 화가가 자신을 직접 그림에 담은 경우는 이전까지는 전무했기에 이는 매우 재미있는 요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수세기 후에야 등장하는 스페인의 화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연상케 합니다. 물론 벨라스케스는 자기 자신을 그림속의 주인공으로 그리고 의뢰인을 거울 속에 그리는, 일종의 한 걸음 나아간 베짱을 보여주기는 했습니다. (벨라스케스의 이 그림은 미술사상 가장 신비로운 그림으로도 불리는데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거울은 반 예이크의 단순 자의식 과잉이었을까요? 혹은 정말 방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다보니 일어난 일일까요? 하지만 그림 속의 다른 퍼즐 조각들을 맞추어 보면 그런 단순한 이유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 그림의 의미에 대해서 알고 나면 나면 화가가 쓸 데 없이 그린 부분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단순한 초상화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다른 명작들도 많은데 왜 이런 사소한 그림에 관심을 쏟아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그림을 계속 보다보면 왠지 모르게 기이한 느낌이 드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침실이라는, 굉장히 사적인 공간에서 손을 잡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두 사람은 정확이 어떠한 관계일까? 이 장면은 두 사람의 어떠한 순간을 담아내고 있는걸까요? 왜 둘의 시선은 미묘하게 엇나가있을까요? 이러한 의문점들에 대해 화가는 애간장을 태우며 직접적으로 답을 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 답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이 그림에 붙들리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손을 잡고 있는 두 부부. 'Dextratrum iunctio'라고 불리는 로마시대의 상징과 유사한 모습이다.

 

 

  가장 직접적인 단서는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라는 그림의 제목일 것입니다. 이 그림은 부부의 초상화입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결혼식의 한 장면을 담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서약을 하는 듯한 남성의 손짓과 살포시 잡고 있는 손을 보면 마치 서로에게 헌신을 맹세하는 모습처럼 보여집니다. 이렇게 손을 맞잡는 행위는 로마 조각상에 자주 찾아볼 수 있는 dextratrum iunctio (라틴어로 손을 맞잡음 이라는 뜻을 가진다)와 매우 유사한데 실제로 로마시대 때는 신랑 신부가 손을 잡는 것이 결혼식에서 중요한 한 예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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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의 결혼식 장면에서 흔히 등장하는 손을 맞잡는 모습으로 신랑과 신부의 결합을 의미했다.

 

 

  이 장면이 두 사람의 결혼식이라는 것을 가정하면 다른 퍼즐조각들도 맞아 떨어집니다. 예를 들어 앞서 말했던 거울속의 반 예이크의 모습과 "반 예이크가 여기 있었다"라는 그의 서명은 당시 관례를 따라 결혼식에 보증인이 참석했다는 증거로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자세히 보면 이들은 신발을 벗고 있죠. 그림을 자세히 보면 두 켤레의 벗겨진 신발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신을 벗었다는 것은 이들이 서있는 장소가 성스럽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성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하나님이 가장 처음으로 한 말은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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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다른 상징들 예컨데 샹들리에의 초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신발을 벗은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에 하나의 촛불은 하나님의 눈 혹은 삼위 일체를 의미했습니다. 즉, 신성한 가호 아래 결혼 서약을 하고 있는 부부의 모습이라고 해석할 여지를 화가가 숨겨둔 것이죠. 실제로 당시 플랑드르 지방에서는 결혼식에 초를 키는 것이 관례이기도 했습니다. 이쯤되어 그저 귀엽게만 보였던 강아지에도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면 정확히 짚었습니다. 강아지는 부부의 결혼 생활에 있어 매우 중요한 덕목인 충실과 신뢰를 상징했죠. 이런 모든 퍼즐 조각을 다 맞추어 보았을 때 이 그림은 결혼식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충분히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이는 에르빈 파노프스키라는 미술 역사학자의 주장을 정리한 것으로 이 그림을 바라보는 정설 중 하나입니다. 이 그림이 흔히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것도 이 때문이죠.

 

  그렇다면 정말 이 그림은 결혼식을 담아낸 그림일까요? 그런데 그게 전부라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있습니다. 이 그림의 주인공으로 여겨지는 인물은 조반니 아리고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로 흔히 알려져있습니다.이 둘은 1447년에 결혼했죠.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 그려진 연도는 1434년입니다. 즉, 그림이 그려진 후 13년이 지나서야 둘이 결혼했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앞뒤가 맞지 않아보입니다. 그렇게 일찍 결혼식 그림을 의뢰했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고 약혼식을 그린 것이라 주장하기에도 13년은 너무나 긴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은 이 그림 속의 아르놀피니 부부는 조반니 아리고 아르놀피니 부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한 사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조반니 니콜라오 아르놀피니였습니다. 즉, 흔히 조반니 아르놀피니라고 알려져 있는 그림 속 남성이 이 사촌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실제로 이 두번째 아르놀피니 부부는 그림이 그려지기 전에 결혼했음으로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여기서 등장합니다. 바로 이 사촌 아르놀피니의 아내가 그림이 그려지기 1년전인 1333년 아이를 순산하던 도중 죽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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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림의 주인공이 다른 아르놀피니 부부라면 앞서 살펴본 상징들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즉, 이 그림은 비극적인 이유로 남편을 떠나야만 됐던 아내와 그런 아내를 잊지 못하고 붙잡으려 하는 남편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죠. 이를 염두에 두고 다시 한번 둘이 붙잡은 손을 보면 이제는 그 모습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그림속의 상징들은 전혀 다른 의미를 띄게 되죠. 먼저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거울을 둘러싸고 있는 문양은 예수의 고난을 상징합니다. 남편쪽에 위치한 문양들은 예수의 삶을 나타내고 있는 반면 아내 쪽에 위치한 문양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나타냅니다. 샹들리에의 촛불 역시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샹들리에를 자세히 보면 남편 머리위의 촛불은 켜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아내 머리위의 초는 밀랍이 다해 불이 꺼지고 거의 녹아 없어져 밀랍의 흔적만 남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살아갈 삶이 남은 자와 삶을 다한 사람을 비교하는 상징으로 볼 수도 있죠. 강아지는 또 어떨까요? 놀랍게도 로마 시대 때 강아지의 상징은 여성의 무덤에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개가 죽음 사람들을 사후세게로 안전하게 이끌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이 모든 것을 비추어 보았을 때 남편이 아내의 기억을 기리고 또 언젠가는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담아내고자 이 그림을 의뢰했다고 해석하면 너무 과장일까요?  사실 이 가설은 미술 역사학자 마가렛 코스터가 주장하는 내용으로 최근들어 힘을 얻고 있는 새로운 관점입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좋아한다. 물론 왜 이렇게까지 공부하면서 그림을 봐야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은 사실 정말 재밌습니다. 그림에 내포되어있는 상징들, 역사적 배경, 숨겨진 이야기, 미술 기법을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말 그대로 천지차이입니다. (참고로 아래에 에르빈 파노프스키와 마가렛 코스터의 가설이 실린 원본을 첨부해 두었는데 안타깝게도 한국어 번역본은 없기 때문에 정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같은 돈과 시간을 들여 미술관을 간다면 이왕 볼거 제대로 봐야되지 않을까요? 저는 이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라는 그림을 통해 그림을 제대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느낀 이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이 그림을 처음으로 포스팅합니다. 무론 앞으로 다른 그림들에 대해서도 글을 쓰겠지만 나에게 가장 의미가 있었던 그림이 있다면 바로 이 그림이 아닐까 싶기 때문입니다.

 

 

 

Koster_Arnolfini Double Portrait.pdf
2.15MB
Panofsky_Arnolfini Double Portrait.pdf
3.30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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